중국에는 수도였던 도시가 많다. 흔히 말하는 '7대 고도(七大古都)'는 시안(西安), 뤄양(洛陽), 난징(南京), 베이징(北京), 카이펑(開封), 항저우(杭州), 안양(安陽)이며, 뒤에 중국고도학회가 정저우(鄭州)를 더해 '8대 고도'가 되었다. 대부분 황허강 중하류에 있는데, 이곳은 초기 중원 왕조의 중심지였다. 창장강 하류의 난징과 항저우는 남방 왕조의 수도였고, 화베이 평원 북쪽 끝의 베이징은 원·명·청 세 왕조의 수도였다.
시안
옛 이름은 장안(長安)이다. 서주의 수도 풍경(豐京)과 호경(鎬京), 진나라의 수도 함양(咸陽)이 근처에 있었고, 전한·수·당이 모두 이곳에 도읍했으니, 도읍한 왕조가 가장 많고 기간이 가장 긴 고도 가운데 하나이다. 당나라 장안성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지금의 성벽은 명나라 때 쌓은 것이다. 도시 북동쪽에 진시황릉과 병마용이 있고, 시내의 대안탑(大雁塔)과 소안탑(小雁塔)은 당나라 때 유적이다.
뤄양
'천하의 중심(天下之中)'으로 여겨졌다. 동주, 후한, 조위, 서진이 모두 뤄양에 도읍했고, 북위는 평성(平城, 지금의 다퉁)에서 이곳으로 천도했다. 수와 당은 뤄양을 동도(東都)로 삼았으며, 측천무후는 '신도(神都)'라 불렀다. 도시 남쪽 이허강(伊水) 양쪽 기슭의 룽먼 석굴은 북위가 뤄양으로 천도할 무렵부터 파기 시작했다. 도시 동쪽의 백마사(白馬寺)는 중국 최초의 불교 사찰로 전해진다.
난징
삼국의 오, 동진, 그리고 남조의 송·제·양·진, 곧 '육조(六朝)'가 건업(建業), 건강(建康)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도읍했다. 명나라 초에 난징을 수도로 삼았고, 그때 쌓은 성벽은 대부분 지금도 남아 있다. 동쪽 쯔진산(紫金山) 아래에 명효릉(明孝陵)이 있다. 태평천국과 중화민국도 이곳에 수도를 두었다.
베이징
금나라는 이곳에 중도(中都)를, 원나라는 대도(大都)를 세웠다. 명나라는 영락제 때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천도했고, 청나라도 그대로 이어받았다. 명·청의 황궁인 자금성은 현존하는 가장 큰 옛 궁전 건축군이다. 베이징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이다.
카이펑
전국 시대 위나라의 수도 대량(大梁)이 이곳에 있었다. 오대의 후량, 후진, 후한, 후주와 북송이 모두 카이펑에 도읍했으며, 북송 때는 동경(東京)이라 불렸다.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는 이곳 변하(汴河) 연안의 생활을 그린 그림이다. 황허강이 여기서 거듭 둑을 터뜨리고 물길을 바꾸면서 진흙이 켜켜이 쌓여 여러 왕조의 도성이 위아래로 겹겹이 묻혔으니, 이를 '성 위에 성이 쌓였다(城摞城)'고 한다.
항저우
오대 오월국의 수도였다. 북송이 망한 뒤 남송은 항저우를 '행재(行在)', 곧 임시 거처로 삼고 임안(臨安)이라 부르며 왕조가 끝날 때까지 머물렀다. 도시 서쪽의 시후(西湖)는 세계유산이다.
안양
상나라 후기의 수도 은(殷)은 지금의 안양 북서쪽에 있었다. 반경(盤庚)이 은으로 천도한 뒤 상나라가 망할 때까지 수도는 이곳에 있었다. 그 유적인 은허(殷墟)에서는 알려진 가장 이른 체계적인 한자인 갑골문이 대량으로 나왔으며, 은허는 세계유산이다.
정저우
시내에 정저우 상성(鄭州商城)이 있다. 상나라 초기의 큰 도성으로, 일반적으로 탕왕(湯王)의 도읍 박(亳)으로 본다. 판축으로 다진 성벽이 지금도 군데군데 땅 위에 남아 있다. 정저우는 8대 고도 가운데 가장 늦게 인정되었다.
